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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있긴 있나요
작성자 우○○ 작성일 2020-12-27 조회수 378
행복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 따라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 행복은 종교와 문학이라면, 물질적 행복은 돈이 아닐까? 물질적 행복이 없는 정신적 행복만이 있을 수 있을까? 정신적 행복이 없는 물질적 행복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둘은 적당한 화합이어야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행복은 도망간단다.

지방자치단체 장을 비롯한 어느 행사장 대표인사말에도 행복이란 말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인간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진리가 아닐까? 관념론 완성철학자 독일 헤겔(1770~1831)은 영원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는 발전에 따라 진리도 변한다. ‘맞다. 틀렸다’ 도 시대에 따라, 어느 쪽에서 보느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듯 행복, 또한 같다.

행복추구진리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 모두가 영원히 얽어 매인 올가미가 아닌가? 하지만 종교가 말하는 최고의 행복, 저세상 천당에도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데, 없는 영원한 행복을 왜 찾느냐? 없으니까? 너도나도 찾지 않을까? 찾고 찾아도 바람같이 왔다가 지나가는 행복, 누구나 다 찾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 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스님이 목숨 걸고 정진했는데도 해탈(解脫)못함을 부처님께 불평했다. 부처님은 가야금에 비유해 답했다. 가야금줄은 너무 조이거나 늦추는 것보다는 적당한 중도(中道)조율만이 최고의 가야금소리가 난다. 이와 같이 중도(中道)는 유(有)나 공(空), 유아(有我)와 무아(無我), 고락(苦樂),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은 바른 도리를 말한다. 인연 따라 물 흐르듯이 자연 질서에 따라 분에 넘치는 욕심은 멀리하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라는 불교교리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를 유교에서는 공자손자 자사(子思BC 483 ~ BC 402) 저서 《중용》에서 체계적으로 잘 설명했다. 중용에 대한 여러 주석 중 최고라는 성리학자 주자(朱子1130년 ~ 1200년) 주석에서는 ‘희로애락(喜怒愛樂)을 찾기 이전, ‘중’이란 기울어지거나 의지하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 것이라 했고 ‘용’은 평상심(平常심心)을 뜻한다.‘고 했다.

철학 스토아학파는 반이성적인간은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안락함과 풍요를 위한 욕심에 휘둘리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욕심을 버리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라며 당시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이를 실천해 많은 사람들은 크게 호응했다. 마음에서 찾던 선조님들 행복과 달리 지금에 대다수 현대인들은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돈을 꼽는다.

돈은 행복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달세 살던 사람이 전세로 갔을 때 행복, 전세에서 10평짜리라도 내 집이, 10평짜리에서 더 큰 집으로…행복이다. 돈도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하지만, 정도이상이 되면 돈에 하인이 되어 행복을 빼앗긴다. 2012년 영국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F)에서 조사한 행복지수 일 등한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10위권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이었다.

행복! '스님 행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스님 불행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스님!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으면 뭐가 있습니까? 배고프지 밥이나 처먹자(지개야 시(詩)중에서).'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행복은 풍요한 물질보다 가난해도 편안한 마음에서 행복이 온다는 옛 선비들에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닌가?

5세기말엽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 2세 아들 알렉산더(BC356~BC323)를 세계 정복할 제목을 만들려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과외선생님으로 모셨다. 과외공부를 어느 정도 한 알렉산더는 10년 전쟁에서 원수의 나라인 페르시아를 전복했다. 화회차원에서 페르시아 3세 왕 다리우스 딸과 결혼했다. 알렉산더대왕은 코린토스를 점령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디오게네스(BC412~323)를 만났다.

커다란 통 속에서 물 떠먹는 표주박하나로 살던 디오게네스가 개가 혀로 물을 먹는 것을 보고 표주박까지 버린 후부터 사람들이 귀잖게 물으면 ‘나는 개다.’라는 일화도 있다. 죽는 순간 ‘내 유해를 맹수들 먹이로 던져 주라’ 했다는 견유(犬儒)파철학자 디오게네스한테 “무엇이든지 다 들어 줄 테니 소원이 있으면 말하시오.” 알렉산더대왕이 말하니 그의 답은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세요” 했다 한다.

인도를 전복하던 중 알렉산더대왕은 죽음을 맞이해, 남긴 유언은 “‘내가 죽으면 나의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아 보이도록 하라.’ ‘신하들이 왜? 그러시느냐?’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차지한 알렉산더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니라.‘” 했다. 알렉산더대왕과 디오게네스 중 누가 행복한 삶이었을까?

우주 언론보도에 따르면 BC323년, 같은 해에 죽은 알렉산더대왕과 디오게네스가 염라대왕재판을 함께 받으러 요단강을 건너며 나눈 대화다. “알렉산더대왕 당신께서는 많은 나라를 정복해 세계를 하나로 뭉쳐 살기 좋은 지구촌을 만들려는 크나큰 공으로 천당이나 극락을 가실 것입니다.” 디오게네스가 말을 던졌다. “아닙니다. 난 많은 살인으로 지옥이지만, 그 누구에 터럭하나도 뽑는 괴롭힘도 주지 않은 디오게네스님은 천당 아니면 극락을 갈 것입니다.”

“알렉산더대왕님! 이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내 혼자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동전일원 베풂이 없는 삶이라 지옥입니다.” 그렇게 오가는 대화로 염라대왕 앞에 차리어엇 자세로 섰다. 두 사람, 판결문은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비공개라 알 수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은 독자님 상상은 자유입니다. 행복은 어제‧내일도 아닌, 살아 있는 오늘, 라면 한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인생 최고 행복이 아닐까요.

출처 : 시니어신문(http://www.seniorsinm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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